우리가 뚫어 본 가장 깊은 구멍은 12km입니다. 지구 중심까지의 0.2%도 못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 속을 압니다.
지구의 반지름은 6,378km입니다. 인류가 뚫어 본 가장 깊은 구멍은 12.2km입니다. 지구가 사과라면 껍질도 다 못 벗긴 셈입니다.
아무도 가 본 적 없고 앞으로도 갈 수 없는 지구 속을,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까요?
지금 지구는 층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막 뭉쳐진 원시 지구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뒤섞인 돌덩어리였습니다.
그 지구가 녹았습니다. 열은 세 곳에서 나왔습니다.
그 결과 표면에서 상당한 깊이까지 녹은 마그마 바다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녹으면 갈라집니다.
섞여 있던 물질이 액체가 되자 무거운 것은 아래로, 가벼운 것은 위로 움직일 수 있게 됐습니다. 고체 상태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이 과정을 분화라고 합니다.
철이 중심으로 가라앉으면 위치에너지가 열로 바뀝니다. 높은 곳의 물체가 떨어지면서 열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지구가 더 뜨거워집니다. 더 뜨거워지면 더 많이 녹고, 더 많이 녹으면 철이 더 잘 가라앉습니다. 스스로를 가속하는 되먹임입니다.
이 폭주 과정을 철 재앙이라고 부릅니다. 재앙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지구도 없습니다.
분화는 지구만의 일이 아닙니다. 달·화성·수성도 모두 겪었습니다. 반대로 충분히 커지지 못해 녹지 못한 천체는 분화하지 않은 채 남았습니다. 지구의 나이를 잰 그 운석들(001)이 바로 그런 원시 물질입니다.
철이 중심에 모였기 때문에 → 액체 외핵이 대류하며 지구 자기장을 만듭니다.
가벼운 규산염이 겉에 남았기 때문에 → 딱딱한 껍질이 생겼고, 훗날 그것이 조각나 판구조 운동이 됐습니다(016).
가벼운 기체 성분이 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 원시 대기와 바다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구가 지금의 지구가 된 조건이 이 한 번의 층 나누기에서 거의 다 나왔습니다.
| 층 | 두께 · 크기 | 상태 | 주 성분 |
|---|---|---|---|
| 지각 | 육지 평균 약 30 km | 고체 | 규산염 암석 |
| 맨틀 | 약 2,900 km | 고체 — 아주 느리게 흐름 | 규산염 |
| 외핵 | 약 2,300 km | 액체 | 철·니켈 |
| 내핵 | 반지름 약 1,221 km | 고체 | 철·니켈 |
내핵의 온도는 약 5,400℃로 추정됩니다. 태양 표면과 비슷한 온도입니다.
내핵은 외핵보다 더 안쪽이고 더 뜨겁습니다. 그런데 외핵은 액체이고 내핵은 고체입니다. 거꾸로 아닌가요?
답은 압력입니다. 압력이 높을수록 녹는점도 함께 올라갑니다. 내핵은 온도가 높지만 녹는점은 그보다 더 높은 상태라 고체로 버팁니다.
017에서 해령의 맨틀이 "압력이 풀려서 녹는다"고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를 반대 방향으로 적용한 것입니다.
인류가 뚫은 가장 깊은 구멍은 러시아의 콜라 초심층 시추공입니다. 1989년에 12,262 m에 도달했고, 지금까지 이 기록이 깨지지 않았습니다.
지구 반지름의 0.2%입니다. 지각도 다 못 뚫었습니다.
그러니 지구 속은 파서 알아낸 것이 아닙니다. 답은 지진파입니다.
왜 S파는 액체를 못 지나갈까요? 횡파가 전달되려면 매질이 옆으로 밀렸을 때 되돌아오려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고체는 옆으로 밀면 버티다가 되돌아옵니다. 액체는 옆으로 밀면 그냥 흘러 버립니다. 되돌릴 힘이 없으니 파가 전달되지 않습니다.
큰 지진이 나면 전 세계 관측소가 파를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위치에서는 와야 할 파가 오지 않습니다.
지구를 자르지 않고 지구 안을 그린 것입니다. 016에서 지진의 진원 분포가 내려가는 판의 모양을 그려 준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1936년, 덴마크의 지진학자 잉에 레만이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P파 그림자대는 아무것도 도착하지 않아야 할 구간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주 약한 신호가 잡혔습니다.
그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액체 핵 안쪽에 파가 더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고, 거기서 반사·굴절된 파가 그림자대까지 돌아 들어온 것이라고.
곧 액체 외핵 안에 고체 내핵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가 추정한 내핵 반지름은 약 1,200 km. 오늘날의 값 약 1,221 km와 거의 같습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입니다. 레만은 전 세계에서 온 지진 기록을 카드에 정리해 손으로 분류하고 계산했습니다.
그런데 발견의 열쇠는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자리에 뭔가 있다"는 사실을 잡음으로 넘기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측정에서 설명되지 않는 작은 값은 대개 오차로 처리됩니다. 그것을 오차로 볼지 신호로 볼지를 가르는 판단이, 때때로 새로운 층 하나를 발견하게 합니다.
여기서 자주 헷갈리는 지점을 정리하겠습니다.
위의 표는 화학 조성으로 나눈 것입니다 — 규산염이냐 철이냐. 그런데 016에서 "판은 지각이 아니라 암석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쓴 구분은 단단한 정도로 나눈 것입니다.
| 기준 | 구분 | 무엇을 묻는가 |
|---|---|---|
| 화학 조성 | 지각 · 맨틀 · 외핵 · 내핵 |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
| 역학적 성질 | 암석권 · 연약권 · 중간권 · 외핵 · 내핵 | 얼마나 단단하고 어떻게 움직이나 |
암석권은 지각 + 상부 맨틀의 딱딱한 부분입니다. 즉 두 구분의 경계선이 같은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지구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를 물으면 앞의 구분을, 지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물으면 뒤의 구분을 씁니다. 하나의 대상을 질문에 따라 다르게 자르는 것은 과학에서 흔한 일입니다.
| 과목·영역 | 이 레슨과의 연결 | 성취기준 |
|---|---|---|
| 중학교 과학 — 지권의 변화 | 지권의 층상 구조와 각 층의 특징. 이 레슨의 뼈대 그 자체 | [9과09-01] |
| 통합과학1 — 물질과 규칙성 | 지각과 맨틀을 이루는 규산염 광물. 왜 가벼운 규산염이 위로 떴는가 | [10통과1-02-05] |
| 지구시스템과학 — 지구시스템의 형성 | P파·S파의 성질과 그림자대. 지진파로 내부 구조를 알아내는 과정 전체 | [12지시01-05] |
| 지구시스템과학 — 지구시스템의 형성 | 마그마 바다와 분화가 지권·기권·수권의 출발점이 되는 과정 | [12지시01-01] |
영상 준비 중입니다
기획안 — 「12km밖에 못 뚫었는데 6,378km를 아는 방법」
지구 내부 구조는 파가 도착하지 않는 영역에서 알아냈습니다. 즉 "없다"는 관측이 정보가 된 것입니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 없음이 증거가 된 사례를 찾아보고, 016의 청색편암 문제와는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보세요.
레만은 아무 신호도 없어야 할 자리에서 약한 신호를 발견했고, 그것을 오차로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실험에서 설명되지 않는 작은 값을 얻었다면, 그것이 오차인지 발견인지 어떻게 판단하시겠습니까? 판단 기준을 세워 보세요.
철이 중심으로 가라앉는 데는 지구가 충분히 녹아 있어야 했습니다. 만약 지구가 조금 더 작아서 끝내 녹지 않았다면, 자기장·대기·바다·판구조 운동은 각각 어떻게 됐을까요? 하나씩 짚어 가며 연쇄를 따라가 보세요.
이 글은 위 자료들을 확인해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특정 저작물의 문장을 옮기거나 요약하지 않았습니다. 링크가 걸린 항목은 작성 시점에 접속을 확인한 자료입니다.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